발행년월일 : 2021-05-06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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고슴도치섬에서 보내는 그림엽서-64
2007년 05월 07일 월요일 춘천신문
-권태

'지구 표면적의 100분의 99가 이 공포의 초록색이리라. 그렇다면 지구야말로 너무나 단조무미單調無味한 채색이다. 도회에는 초록이 드물다. 나는 처음 여기 표착漂着하였을 때 이 신선한 초록빛에 놀랐고 사랑하였다. 그러나 닷새가 못 되어서 이 일망무제의 초록색은 조물주의 몰취미와 신경의 조잡성으로 말미암은 무미건조한 지구의 여백인 것을 발견하고 다시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.

어쩔 작정으로 저렇게 퍼러냐. 하루 온종일 저 푸른빛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. 오직 그 푸른 것에 백치白痴와 같이 만족하면서 푸른 채로 있다.

이윽고 밤이 오면 또 거대한 구렁이처럼 빛을 잃어버리고 소리도 없이 잔다. 이 무슨 거대한 겸손이냐'

-이상 시인의 수필 <권태> 중 부분

녹색의 권태가 시작됐습니다. 애써 꽃을 외면한 시인의 정신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, 며칠째 빈둥거린 한 낮입니다. 가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.

   

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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